[시론] 혁신의 아이콘, 게임산업 죽이자는 건가

입력 2015-11-08 18:04  

"파괴적 혁신 찬사받던 온라인게임
셧다운제 등 규제 탓 고사 직전
간섭 걷어내 민간 창조력 복구해야"

위정현 < 중앙대 교수·경영학 jhwi@cau.ac.kr >



우리가 아는 동화 ‘파랑새’의 줄거리는 이렇게 시작된다. 어느 날 밤 오두막집에 사는 티르티르와 미티르 남매를 찾아온 요술쟁이 할머니는 아픈 딸이 파랑새를 보고싶어 한다며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남매는 할머니가 건네준 다이아몬드가 달린 마법의 모자를 쓰고 파랑새를 찾아 나선다. 추억의 나라, 밤의 궁전, 미래의 나라 등 남매는 환상의 세계로 가서 우여곡절 끝에 파랑새를 만나지만 파랑새들은 날아가버리거나, 색깔이 변하거나, 죽어버린다. 남매는 파랑새를 손에 넣지 못하고 실망해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놀랍게도 그토록 찾아 헤매던 파랑새가 자기 집 새장에 들어 있었다.

이 이야기는 벨기에 출신 극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가 1906년에 발표한 6막 12장의 희곡을 각색한 것이다. 우리는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는 소박한 의미로 해석해 주던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개인의 행복을 넘어 요즘의 한국 게임산업이나 창조산업에도 적용된다. 한국의 게임은 이제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몰려 있다. 2015 게임백서에 따르면 2010년 2만658개이던 국내 게임업체 수는 지난해 1만4440개로 5년 새 30% 정도 급감했다. 게임업계 종사자 수도 2012년 5만2466명이었으나 작년에는 3만9221명으로 25% 줄었다. 산업의 활력도 사라졌다. 온라인게임은 현상유지만 해도 다행이고 모바일게임은 유통의 독과점 구조가 형성돼 소규모 개발사의 성공신화는 동화 속 이야기가 돼 버렸다.

10여년 전만 해도 한국의 게임산업은 외국인에게 충격과 경이의 대상이었다. 창조산업의 파랑새였던 셈이다. 2009년 혁신에 관한 세계적 연구기관인 영국 서섹스대의 과학정책연구소(SPRU)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연구소 소장 티드 교수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한 5개의 콘텐츠산업을 연구하고 있다. 음악은 브라질, 영화는 인도인데 게임은 한국이 대상이다. 어떻게 한국에서 이런 혁신적 산업이 탄생할 수 있었는가.” 티드 소장의 연구팀은 창조산업 육성에 목매고 있는 영국 정부 의뢰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건 연구를 했으니 당신도 잘 알지 않느냐”고 슬며시 떠보자 티드 교수는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실은 아무리 조사해봐도 그 요인을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세계에서 유일하게 인정받는, 파괴적 혁신을 이룩한 창조산업으로 주목받던 게 한국의 온라인게임이었다. 이런 찬사를 받던 한국의 게임산업을 정작 우리 정부는 규제의 칼날을 들이대 싹을 잘라 버렸다. ‘신데렐라법’이라 불리는 셧다운제를 비롯해 외국 학자들이 신기하게 여기는 온갖 규제를 쏟아냈다.

요즘 한창 각광받고 있는 핀테크(금융+기술)산업도 한국의 온라인게임에 그 원형이 숨겨져 있다. 게임에 존재하는 가상 아이템의 생성, 구매, 교환, 거래는 핀테크산업에 필요한 모듈이다. 이런 모듈이 자연발생적으로 등장했지만 정부는 ‘아이템 현금거래 금지’를 입법화해 핀테크산업으로 꽃피우기 전에 싹을 잘라 버렸다. 그러고는 이제 핀테크산업을 육성한다고 미국으로, 유럽으로 동분서주하고 있다.

10년 후 집안에 있는 새가 파랑새임을 뒤늦게 자각하고 우리가 새장으로 뛰어갈 때 이미 그 새는 죽어 있을지 모른다. 1990년대 중반 한국 게임산업의 맹아는 규제도 진흥도 없는 ‘정부의 무관심’ 속에서 싹텄다. 그런 민간의 창조력이 작동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복구되도록, 그래서 창조의 파랑새가 회생할 수 있도록 규제의 칼날을 거두는 것이 필요한 때다.

위정현 < 중앙대 교수·경영학 jhwi@ca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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